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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 LIFE

동문인터뷰

한국과학원 전기 및 전자공학과 1회 졸업생 안순신 동문

이번 겨울호에서는 한국과학원 전기 및 전자공학과 1회 졸업생인 안순신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이번 인터뷰는 졸업생이 졸업 후 살아온 길보다는 졸업생으로서 모교에 대한 견해를 중심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전기 및 전자과 구성원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독자들이 읽고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Q.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번 ‘졸업생 인터뷰’을 통해 저희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A. 그렇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카이스트 학생들과 교수님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잘 전달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Q.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합니다.

A. 먼저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 이전에 오히려 제가 간단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곽철현 기자는 학교에서 교육을 시키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Q.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나중에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A. 좋은 답변이지만 본질까지 꿰뚫는 답변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제 견해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육은 1차적으로는 ‘지향적 자생력’을 기르기 위해서 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생소한 개념입니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주시겠습니까?

A. 제가 말하는 ‘지향적 자생력’은 사전적 의미와 비슷합니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스스로 살길을 찾아 살아 나가는 능력’이죠. 사람이 공부하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바람직한 방법으로 먹고 살아나가기 위함입니다. 모든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스스로 살아나갈 수 있도록 키우는데 아이가 성장하면서 보여준 뛰어난 자질을 통해 그 아이에게 맞는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카이스트 학생들이 과학을 공부하는 것은 그 동안 과학에 뛰어난 자질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죠.

이제 카이스트에 들어온 학생들은 공부를 통해 어른이 되어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공부를 하게 됩니다. 즉, 1차적으로는 생존해나가기 위한 능력인 자생력을 길러나가는 것이죠. 많은 학생들이 대학 초기에는 방황을 합니다. 과학에 두각을 나타내어 학교에 입학하였지만 아직 자기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나중에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자생력 있는 학생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에는 자기가 갈 길을 찾아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이렇듯 대학생활 중에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주면서 자생력을 키워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에게 충분히 자생력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이나 시간이 주어지는 대신, 다양한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책임을 강조하는 말로 그들에게 공부만을 강요한다면 학생들은 혼란스러워합니다. 애초에 과학을 배우러 카이스트에 들어온 것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본능에 따라 나중에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을 배우러 온 것인데 학교에서 자기가 나아갈 길에 대해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자생본능보다는 고차원적인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면 당연히 학생들은 내적인 갈등을 겪고 힘들어하겠죠.

카이스트 학생들은 충분히 똑똑한 학생들이니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자생력을 기를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면 그 속도는 서로 다르지만 결국에는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의 갈 길을 찾아갈 것입니다. 여기서 교육은 학생들의 살아남으려는 능력, 자생력을 증진시켜주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 자생력이 생기면 과학원의 환경에서 졸업한 졸업생들은 충분히 사회에서 요구하는 도덕 및 책임감을 가진 인격체로 성장할 것이라 봅니다.

Q. 그렇다면 최근 논란이 된 카이스트의 교육방식에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인가요?

A. 부분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카이스트는 우수한 학생들을 모아놓은 곳입니다. 하지만 어느 집단이든 1등부터 꼴등이 나옵니다. 이런 서열이 매겨지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렇게 서열이 정해진 이후의 학생의 마음자세 및 학교의 대처입니다. 사람은 객관적이기 보다는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존재라서 꼴찌가 된 학생은 스스로 자괴감에 빠져 위축됩니다. 하지만 이 학생은 대한민국 전체로 보면 여전히 상위 1%에 드는 우수한 인재임은 변화가 없습니다. 오히려 카이스트가 아닌 다른 학교에 갔더라면 분명 1등 할만한 실력의 소유자이죠. 학생들이 이런 객관적인 시각을 가졌다면 카이스트 내의 하위 학생들의 아우성과 불만이 지금 만큼일까 싶습니다. 과거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학생들이 있는데 정확한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그들이 객관적인 시각으로 스스로를 볼 수 있었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또한 그런 객관적인 시각을 넣어주는 것이 학교당국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교육이란 강요가 아니라 학생자신이 바람직한 자생력을 최대한 성장시킬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구축하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Q. 방금 하신 말씀을 확대해서 질문 드리겠습니다. 그 동안의 서남표 총장의 교육방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이번에 서남표 총장이 사퇴하겠다는 보도를 듣고 그 동안 서남표 총장의 ‘개혁’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 동안 학교의 발전을 위해 많이 노력한 서남표 총장이지만 그의 운영방식에 아쉬운 점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너무 결과만을 따지는 측면이 강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비단 교수들에게만 적용되지 않고 학생들에게까지 적용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아직 학부 학생들은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와서 자생력을 기르는 것이 시급한 시기에 놓인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상대적인 열등감이 심하게 느껴지는 경쟁체제와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태도로 교육을 한다면 그들의 자생력 및 인격형성의 자양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서남표 총장의 취임 이후 카이스트가 세계일류대학으로 나기 위한 많은 노력은 인상 깊었고 칭찬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당장 결과를 많이 내서 일류가 되자’와 ‘학생들의 자생력 자양을 우선시 하는 교육을 통해 일류가 되자’는 분명 다릅니다. 정말로 일류가 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전자보다는 후자의 전략을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Q. 선배로서, 그리고 오랫동안 교수직을 하신 경험을 바탕으로 차기 총장이 가져야 할 자질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A. 차후 어떤 사람이 카이스트의 총장으로 선출될지는 모르겠지만 교육방식만큼은 앞서 말한 ‘학생들의 바람직한 자생력 증진’을 염두에 두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람직한 조직이란 의견을 수렴할 줄 알고, 수렴된 결과의 수준이 높아야 하며, 또한 수렴된 결과가 바람직한 지향성을 갖는 조직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런 바람직한 조직을 만드는데 헌신하고 수렴될 결과를 행위로 옮길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총장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Q. 학생들의 자생력을 키우는 것을 강조하시는데, 실제로 학생들의 자생력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교수님들의 약간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학생들이 겪고 있는 고민들과 문제들을 분명히 똑같이 겪었을 교수들은 이들에게 조언해줄 충분한 연륜과 경험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학생들과 가까이 있죠. 수업시간에 진도를 조금 덜 나가더라도 짧게나마 학생들에게 각자의 주관적인 틀에 한정되지 말고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평가해야 여전히 우수한 인재들이며 앞으로 걸어갈 길이 먼 젊은이들 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면 좋을 것입니다.

이런 방법이 어렵다면 학생들과 교수들 간의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수업을 하나 개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학점은 1학점, 평가방식은 Pass or Fail로 하면 적당하지 않을까요. 학점이 하나라도 달려있으니 학생들은 참여해야 할 요인이 존재하며 수업에는 나름대로의 강제성이 부여됩니다. 평가방식은 Pass or Fail이므로 학생들이 이 수업을 수강하는데 큰 부담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교수들은 짬을 내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고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이죠. 그리고 학생들끼리도 대화를 유도하면서 학생들에게 ‘이런 고민은 나만 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 외에 이런 고민들을 서로 터놓고 말하면서 학생들이 스스로 자생력을 갖춰나갈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둔 동아리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동아리의 활동이 인문학과 관련된 것이든, 다른 분야든 큰 상관은 없으나 중요한 것은 선배와 후배들 간의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도록 유도하여 학생들끼리 모여 서로 비슷한 고민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Q. 학생들의 입장에 서서 많은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혹시 석사시절 카이스트에 계실 적에도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스스로 많이 돌아보셨나요?

A. 그때는 저도 어려서 상대적으로는 지금처럼 명확히 보지는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앞서 말씀 드린 것들 및 여러분이 겪는 어려움은 저 때의 카이스트에 있던 석사 학생들에게도 적용된다고 봅니다. 지금의 카이스트 학생들만 성적이 낮다고 비관할까요? 한국과학기술원의 첫 기수이던 학생들도 모두 우수한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실력차이가 존재하여 몇몇 동기들은 많이 괴로워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그래도 결국에는 모두 괴로운 시절을 견뎌내고 자기의 갈 길을 갑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남들과 의견이 충돌하였을 때 쉽게 해결하지 못하고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당시 졸업하고 나서 기업이나 연구소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상사 혹은 남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일이 많은 곳에 가서 내가 적응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고심 끝에 제 스스로를 위해서 결국 카이스트 박사진학을 선택하게 되었죠. 그때 마침 프랑스와의 통상이 열려서 프랑스로 유학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국과학기술원 졸업생 중 처음으로 해외유학을 가게 된 것도 어느 정도는 제 스스로를 돌아보며 제 자신을 조금은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오늘 말씀 중에서 학생들의 ‘자생력 증진’에 대해 많이 강조를 하신 것이 굉장히 뜻 깊었습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카이스트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조언이나 말씀이 있으시다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A.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살아남는 능력을 기르는 것 외에도 말씀드릴 만한 것은 바로 ‘공부를 할 것이면 확실히 해라’입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을 보면 대충 보고 다 이해했다는 듯이 넘어가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공부할 내용이 있으면 논리적으로 하나하나 따져보지 않고 ‘그럴 것 같다’라는 느낌을 받고 다 이해하였다고 착각하거나 심한 경우, 책보다 자신의 의견을 더 믿는 경우가 있습니다. 초기에는 이런 공부 법으로 나름대로 괜찮게 생활했을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잘못된 이해와 부족함이 드러나는 공부 법입니다. 교과서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할 때는 책이 옳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그것에 맞춰나가야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생각을 하나하나 맞춰나가려면 세세한 것까지 논리적으로 따져보는 세심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공부를 확실히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또한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는 여럿이서 서로 모르는 것을 공유하고 자기도 모르게 넘어갔던 부분을 서로 지적할 수 있도록 비판적 스터디 그룹으로 공부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오늘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구성원들에게 자생력을 중심으로 카이스트가 앞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방향을 생각해볼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불어 같이 말씀해주신 경험들과 조언들을 많은 독자들이 읽어서 도움을 얻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곽철현 기자 /kwagjj@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