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카이스트가 설립된 이후 카이스트는 한국의 과학/공학 발전에 큰 이바지를 하였다. 특히 카이스트 전자공학과는 기초가 부실했던 한국의 전자공학을 크게 발전시켜왔으며 현재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카이스트의 전자과의 시작을 함께한 역사의 산 증인이자 회로 설계의 대가인 조규형 교수를 만나보았다. 전자과의 현주소와 미래, 아날로그 설계 분야의 전망, 그리고 그가 후배 연구자들에게 전해줄 조언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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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선 바쁘신 와중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교수님께서는 무척 오랜 기간 카이스트에 재직 중이신데, 정확히 몇 년도부터 재직하셨나요?
A) 1983년 11월부터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Q. 정말 오랜 기간 재직하셨네요. 교수님을 카이스트 전자과의 산 역사라고도 말씀드릴 수 있는데, 그 당시의 전자과는 현재와 비교하면 어떤 모습이었나요?
A) 저는 카이스트 제3회 석사 졸업생이었습니다. 그 당시 카이스트 전체 정원이 135명으로 그 중 전자과 학생이 19명이었습니다. 학과도 몇 개 없었고 교수님도 4분만 있으셨습니다. 당시에는 병역과 등록금 면제, 학자금 지원 등으로 카이스트가 굉장히 인기가 많았습니다. 교수님도 특별 대우를 받으셨고, 자부심이 무척 높았습니다. 75년도에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에 진학하였는데, 이때가 카이스트에서 처음 박사 학생들을 선발했을 때로 전자과에서는 4명이 뽑혔습니다. 이 4명 중 3명이 경종민, 김병국 교수님 등으로 지금 우리 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십니다. 현재와 비교하면 그 당시의 연구 환경은 원 전체에 컴퓨터가 1대 있었을 정도로 열악했습니다.
Q. 카이스트 전자과의 현주소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사실 카이스트 전자과는 국내에서 상대가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위상이 상당히 높습니다. 삼성 휴먼테크 논문대상만을 봐도 우리 학교가 석권하고 있고요. 국외에서도 카이스트가 굉장히 많이 알려져 있으며 상당히 top class에 속해 있습니다. 반도체 회로 설계 분야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ISSCC라는 학회가 있습니다. 회로 설계 분야는 칩을 만들고 동작 시킨 것이 논문으로 나오기 때문에 그 나라의 기술력을 대변하는데, 2000년대 전반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ISSCC에 거의 논문을 못 냈습니다. 전부 미국, 유럽, 일본이 독식하고 있었죠. 하지만 최근 10년 통계를 보면 카이스트가 세계에서 ISSCC에 가장 많은 논문을 낸 기관이 되었습니다. 매년 대학들이 ISSCC에 낸 110여 편의 논문 중 10편 이상을 카이스트에서 낸 것입니다. 이 결과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는데, 학회 역사 60년 동안 매년 나라, 학교별로 통계 발표를 하던 것을 중단하였습니다. 카이스트가 계속 1등을 하니까요. 즉, 반도체 회로 설계 분야는 카이스트가 세계에서 최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에 해외 기업에서는 카이스트 졸업생을 뽑을 때, 미국 일류 대학 졸업생과 동등한 조건으로 데려간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ISSCC와 같이 공개경쟁을 하는 곳에 나가 1등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해외에서도 카이스트를 알게 되겠죠.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이를 위해서는 연구를 잘 해야 합니다.
Q. 지금까지 해오신 연구와 현재 집중하고 계시는 분야에 대해서 간략히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A) 저는 전공을 한 번 바꿨습니다. 2000년 이전에는 전력 전자 분야였습니다. 제가 카이스트에 처음 입학했을 때는 우리나라에 반도체 회사가 없었습니다. 회로 설계를 하고 싶은데, 이를 전공해서 취업할 곳이 없는 것 입니다. 칩을 만들 수도 없어 어디에 논문을 낼 수도 없었습니다. 환경이 안 됐죠. 그래서 전력 전자 분야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전력 전자 분야는 제가 국내에서 거의 최초였습니다. 80년대에서 2000년까지 그쪽 분야를 연구하여 많은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졸업생들이 High Power 분야로 취업과 창업을 많이 하였습니다. 코스닥 상장을 할 정도로 잘 된 회사들도 몇 개 있는데, 보통 전동차, 고속 전차, 핵융합 발전소 등의 매우 큰 power를 필요로 하는 분야에 속해 있습니다. 아마 지금 유럽에서 짓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핵융합 발전소의 power supply를 우리 졸업생이 만든 회사에서 담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전력 전자 분야에서 크게 성공을 하였는데, 90년대 말쯤 되어서 삼성전자에서 메모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메모리가 한창 뜨면서 매스컴에서 메모리에 관한 찬사가 이어졌지만 오직 메모리 밖에 할 줄 몰랐습니다. 시스템 반도체 쪽은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메모리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메모리도 전자공학에서 중요한 분야지만 전체 시장에서는 시스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메모리 시장보다 4배 정도로 훨씬 큽니다. 이 시스템 반도체에 속하는 아날로그 분야도 상당히 큰데 우리나라는 이 분야가 매우 취약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전자공학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메모리 분야 말고 다른 분야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날로그 분야였으므로 아날로그 인재들을 양성하고, 해당 분야를 발전시켜 사회에 도움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반도체 시장은 제가 주력으로 했던 전력 전자 분야보다도 훨씬 컸고, 전력 전자 분야는 이미 상당히 백그라운드가 잘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기존의 전력전자 분야에서 아날로그 회로설계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조금씩 회로설계관련 연구를 확대하며 해당분야에 집중하였고 2006년 이후부터 우리 연구실에서 ISSCC에 논문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매년 꾸준히 논문을 냈고 2013년에는, 60년 ISSCC 역사에서 가장 많이 논문을 낸 10개의 그룹과 최근 10년간 논문을 가장 많이 낸 10개의 그룹을 뽑는 통계에 당당히 16인 이내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카이스트 전자과에서는 저(조규형 교수)와 유회준 교수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오랫동안 좋은 성과를 내왔고 이에 우리 연구실 졸업생들은 연구실에 대해 자부심이 높습니다.
Q. 연구뿐만 아니라 창업에도 관심이 많으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창업에 관련해서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A) 저는 벤쳐 붐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창업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카이스트 설립자 ‘터만’ 교수가 저에게 “지금 당신의 목표는 산업인력을 양성하는 것이지만 20년이 지나면 목표를 수정해야 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2000년이 되고 설립 후 30년이 지난 후에도, 실상은 거의 처음과 같았습니다. 다른 쪽으로 가야 할 길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본 결과, 우리가 살 길은 벤처기업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벤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홍보하였습니다. “See KAIST”(여러 산업체를 부르고 연구/개발 중인 기술을 시연, 소개하는 행사) 행사도 전자과에서 처음 시행하여 약 10년 동안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다 직접 창업을 하게 되었고 최선을 다해 일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학생들과 회로설계 연구자들에게 창업에 관한 영감을 줄 수 있었고 저 자신에게도 연구가 아닌 다른 분야에 힘을 쏟을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Q. 회로 분야로 대학원이나 취업을 생각하는 학부생들에게 해주실 수 있는 학문적인 조언이 있을까요?
A) 학부생들에게는 학교의 커리큘럼을 잘 따라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학부는 기초를 배우는 단계이기 때문에 열심히 해서 자신의 적성에 맞고 끌리는 분야로 진학해야 합니다. 공부하다 보면 자신에게 맞는 분야가 무엇인지 알게 되는데 그쪽으로 이어서 공부를 하거나 취업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Q. 연구를 잘하는 학생은 어떤 학생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연구를 잘하려면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창의력이 있는 학생도 있고, 창의력이 조금 부족하지만 아주 열심히 하는 학생도 있고, 감이 부족해서 굉장히 노력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감을 완전히 잡게 되면 기업에 가거나 창업을 하더라도 자신감이 생깁니다. 사람마다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은 노력해서 보완하면 괜찮습니다.
Q. 집필하신 전자회로특론 책이 기존의 교재와는 다른 접근 방식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무척 유명한데요, 이를 국내외 다른 학교 학생들도 배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전자회로특론 수업은 오직 카이스트 학생들만이 배울 수 있는 수업입니다. 제가 2018년 여름에 은퇴할 예정이기 때문에 내후년 봄까지는 수업을 개설할 예정입니다. 그 이후에는 아직 잘 모르겠네요. 전자회로특론 책은 오직 국문 판으로만 내고 영문판이나 논문으로는 내지 않아 해외에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외부로 서서히 퍼지기는 하겠지만, 천천히 퍼지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강의를 하였기 때문에 졸업생들을 통해 퍼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베트남의 한 교수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제 책을 타이핑하여 번역기로 번역해서 공부하고 있는데, 원본을 보내줄 수 있는 지 물었습니다. 물론 거절하였지만, 후에 영문판이 나오면 해외로 공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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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교수님에게 교수라는 직업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A) 저에게 교수의 의미는 학생들과 같이 소통하고 연구하는 것입니다. 학생들과 소통하고 같이 연구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교수가 최고의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그것에 만족하고 즐기고 있습니다. 다만 교수가 될 때 저는 산업체 경험 없이 박사학위를 받고 POST-DOCTOR로 2년을 지낸 후 바로 KAIST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산업체 경험을 쌓고 다시 교수직으로 돌아오신 분들이 있는데, 기업 경력이 있으니 기업과의 연결 포인트도 있고 필드경험을 바탕으로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를 하고 싶다면 기업체 경험을 해보고 교수로 오는 것을 추천합니다. 실제적인 경험을 해보고 오면 학생들을 더욱 잘 지도할 수 있고 실제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Q. 어떻게 오랫동안 연구에 대한 열정을 유지해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A) 제가 열의를 유지한다기 보다도, 학생들이 열정이 있으면 같이 열의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이 배우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으면 같이 따라가 줘야 하므로 자연히 열의가 생깁니다. 전 세계에서 카이스트를 No. 1으로 올리고자 하는 목표도 연구를 계속하게 하는 동기입니다.
Q. 교수님이 연구해온 아날로그 회로의 미래 전망에 대하여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A) 디지털로 바뀌면서 아날로그는 한물갔다고 이야기하지만, IC 회로 칩 설계는 여전히 아날로그 엔지니어를 필요로 합니다. 소자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아날로그처럼 동작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계속 아날로그 분야의 연구가 필요합니다. 또한, 이 분야는 상당히 복잡하고 재능이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엔지니어가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날로그 엔지니어의 희소성이 높아 그 가치가 더 높아질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아날로그 엔지니어의 급여가 높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 상황이 유지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전자공학의 전망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A) 전망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제가 70년 초반에 입학할 때 전자공학이 모든 분야를 통틀어 인기가 최고였었는데, 지금까지도 그 인기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50년 동안 이렇게 인기를 끌고 있는 학과가 지금껏 없었고, 이를 유지한 것은 기적적이고 엄청난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지만, 저는 정보혁명을 대체할만한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소프트웨어 쪽이 주목 받고 크게 발전하고 있지만, 이를 받쳐줄 하드웨어가 필요합니다. 하드웨어 없이 소프트웨어만 있을 수 없기 때문이죠. 따라서 하드웨어로서의 전자공학은 유지되리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바쁘신 와중에 인터뷰에 응해주신 조규형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김세엽 기자, kimsy9509@kaist.ac.kr
정윤태 기자, yuntae1000@kaist.ac.kr
김정효 기자, wjdgy3746@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