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KAIST는 개교 41주년을 맞이했다. 41년이란 길다면 긴 시간 동안 KAIST는 거침없이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대한민국 과학의 요람’이라고도 할 수 있는 KAIST의 명성과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의 관심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 중에서도 졸업생들의 기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졸업생들이 펼치는 다양한 활동들은 좀 더 나은 KAIST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원동력은 학교 발전에 중요한 요소로서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목적으로 이번 EE Newsletter 가을호에서는 KAIS(한국과학기술원 전신) 2회 졸업생 표삼수 이사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랑스러운 KAIST 졸업생이자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기업인이셨던 표삼수 이사의 말씀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어떠한 형식으로든 얻어가는 것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Q. KAIS에서 석사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A. 그렇습니다. 저는 한국과학원(KAIS)를 2회로 졸업하였습니다. 학부과정을 끝낼 당시에 국가의 지원 아래 한국과학기술원이 설립되어 저를 포함한 많은 학생이 지원서를 냈습니다.
Q. KAIS에서는 어떤 연구를 하셨습니까?
A. 저는 석사과정부터 컴퓨터 공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computer simulation에 집중하였고 numerical analysis 등의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Q.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하시다가 컴퓨터 공학에 집중하게 되신 계기가 있나요?
A. 당시에도 학교에 계절학기 수업이 개설되었습니다. 몇몇 수업에서 미국의 교수님들을 초청하여 신기술을 소개해 주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어느 날,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에서 교수님 한 분이 검은 가방을 들고 왔습니다. 그 안에는 현재의 PC가 된 Micom이 있었습니다. 다른 교수님들은 Mini computer를 선보여 그 자리에서 탱크 모형을 real time programming으로 작동하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저는 이런 수업을 듣고 참여해보면서 재미를 느꼈고 컴퓨터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고 그때 컴퓨터 공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Q. 학교에서의 수업이 진로에 영향을 주었네요.
A. 맞습니다. KAIS에서 수업을 듣고 연구를 진행하면서 제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교육이나 연구를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Q. 석사과정을 졸업한 후에는 어떤 길을 밟으셨습니까?
A. 졸업하고 원자력연구소에서 연구하였습니다. 그러다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박사과정을 위해 미국의 Carnegie Mellon University(CMU)로 향했습니다. CMU는 학과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학교였습니다. 융합 연구(Interdisciplinary research)를 중요시하는 학교로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기 좋은 곳이지요. 이 덕분에 저는 수월하게 컴퓨터 아키텍쳐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슈퍼컴퓨터, 원격제어(인공지능)에도 관심을 뒀습니다.
80년대 후반에는 미국에서 교육에 종사하였습니다. 그렇게 대학교수를 하던 중 80년대~90년대에 한국에서 대대적으로 공학자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삼성, 금성, 대우, POSCO, 현대와 같은 기업들은 모두 이 당시에 사업을 키우기 시작했고 국가적으로도 발전에 집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도 이러한 시류를 따라 90년대에 삼성종합기술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Q. 이때까지 계속 연구원 생활을 하신 것 같은데 어떻게 경영의 길로 들어섰습니까?
A. 삼성종합기술원에서 멀티프로세서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대체로 연구가 장기적인 목표를 두고 하는 연구였습니다.
저는 컴퓨터의 생산과 연구는 단기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기간 내에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면서 산업이 발전한다고 봅니다.
기업에 와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점점 영업의 중요성을 느꼈지요. 또, 고객 가치가 무엇인지 알고 ‘실용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일에 점점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경영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연구원에서 경영인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90년대 말에는 현대 전자 시스템 사업 본부에서 사업을 펼쳐 볼 기회가 생겨 삼성전자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Q. 현대에서 근무하신 후에는 금융권으로 가셨습니다. 임기를 다하신 후에는 한국오라클 사장으로 계셨습니다.
A. 윤병철 회장님이 계신 우리금융 그룹의 우리금융시스템의 Chief Information Officer(CIO)로 있었습니다. 임기가 끝난 후에는 Relational Database의 상용화, Enterprise Resources Planning(ERP) 등의 사업을 하는 한국오라클로 갔습니다. 회사에 어려움이 있어 혁신이라는 목표를 갖고 갔습니다. 글로벌 회사의 지사는 대체로 영업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연구개발에도 투자를 늘리려 했습니다.
Q. 그 후 KT로 옮기셨습니다. 통신 회사인 KT와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어떤 관계가 있어 가게 되셨습니까?
A. KT가 통신회사로 전산, 통신 등의 분야와 관련이 깊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은 컴퓨터입니다. 즉, 자재 관리부터 교환기 연결 등의 업무까지 모두 컴퓨터가 관여합니다. 회사 운영에 필수적인 요소이지요. 이러한 일련의 부문을 담당했습니다.
Q. 그렇다면 KT IT 기획실은 말씀하신 일들을 관리하는 곳이겠네요.
A. IT 기획실은 Information Technology(IT)을 통한 개혁과 혁신을 주도하는 곳입니다. IT를 통한 업무의 효율을 극대화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막대한 투자와 Business & Information system Transformation(BIT) 프로젝트를 비롯한 작업을 통해 업무 방식의 정착을 이뤘고 비용 절감을 했습니다. 또한, 회사 내부의 IT 역량을 높였습니다.
Q. 개혁안 중에 ‘Green IT’ 역시 주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A. 화석 연료의 지나친 사용으로 계속해서 에너지난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CO2, 프레온 가스의 배출로 온실 효과 등의 환경 오염 역시 계속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에너지원을 새로 찾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태양열, 태양광, 수력, 조력, 원자력 에너지 등의 대체 에너지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Green IT’는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일례로, 데이터 센터에 있는 컴퓨터 서버의 전기 에너지 소모, 열 방출을 최소화하고 전력 시설을 교체하는 등의 작업을 했습니다.
Q. 공학도에서 전문경영인이 될 정도로 경영에 매력을 느끼신 것 같습니다.
A. (웃음) 앞에서 언급했듯이 ‘실용적인’ 문제를 접하고 해결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는 미국 유학 생활 중에 학교의 교육 방식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Q. 현재는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A. 지금은 카이스트 이사이자 학교발전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있습니다. 카이스트의 여러 학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내 소통을 원활히 하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어떤 갈등이든 원인은 오해와 소통의 부재에서 온다고 봅니다. 저는 여러 견해를 들어주고 소통이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Q. 오랜 기간 리더의 역할을 하는 동안에 리더로서의 철학이 있었다면 무엇입니까?
A. 시간이 지나면서 리더로서의 철학이 조금씩 변했습니다.
사기업이면 직원들은 owner의 철학과 최대한 일치하고 이를 구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례로, 삼성은 이건희 회장님은 회사의 국제화에 집중하는 新 경영을 90년대 초에 펼쳤습니다. 이러한 철학을 잘 이해하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젊은 시절에는 리더가 우월한 위치에서 부하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dictating leadership’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금융, 한국오라클, KT를 거치면서 리더로서의 철학이 바뀌었습니다. ‘Coaching leadership’과 같이 가르쳐주고 이끌어주는 리더십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더 나아가 사람들이 스스로 따라오도록 하게 하는, 모든 구성원을 아우르는 ‘servant leadership’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이러한 리더십을 가장 확연히 볼 수 있는 예시로는 예수님의 솔선수범하고 희생하는 모습이 있지요.
사기업과는 분위기가 다른 우리 금융에서 근무하면서 윤병철 회장님과의 독대가 이러한 생각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Q. 더 나아가 혹시 인생 철학(Motto)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A. 저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즉,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전력을 기울이고 천명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특히, 어떤 상황에서도 주어진 일에 진심으로 정성을 쏟는 것이 매우 중하지요.
Q. 전기 전자 또는 컴퓨터 공학 학생과 종사자들이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까요?
A. 이는 흔히 말하는 ‘인재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 인재상으로 A형 인재와 T형 인재가 있습니다.
A자형 인재의 경우, ‘A’ 상단부의 첨예한 부분이 핵심으로서 전문성을 더욱 중요시한 것입니다. 그 상태에서 주변 기술, 인간관계, 팀워크 등을 갖추어야 하지요.
반면, T자형 인재의 경우, ‘T’ 상단부의 직선은 앞서 말한 주변 기술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T’의 세로로 있는 직선은 전문성을 의미합니다. 결국, 전문성으로 기초를 이룬 상태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즘은 T자형 인재를 더 언급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모두 전공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것을 접하고 인간관계 및 팀워크를 발전시킬 노력을 하길 바랍니다.
저는 KAIST에서 공부할 때 공학 경영학 수업을 들었었고 그전에는 회계 자격증도 땄습니다.
Q. 후배들에게 당부의 말씀 부탁합니다.
A. 연구를 깊게 하고 공부에 매진하는 것이 기초, 근간이 되는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T자형 인재를 염두에 두며 팀워크, 소통 능력을 배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역지사지, servant leadership 등의 자세를 숙지하여 일에 접근한다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Q. 동문 분들에게도 말씀 부탁합니다.
A. KAIST 졸업생 여러분, 동문회 현황이 예전에 비교하면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관심과 참여가 저조합니다.
각자의 생활에 바빠 학교를 떠나고 나서 모교에 소홀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KAIST가 ‘좋은’ 학교가 되기 위해서는 동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미국의 손꼽히는 대학들을 보면 동문의 강력한 네트워크에 감탄하였습니다. 잠깐의 시간 투자나 아주 작은 기부라도 그것이 학교 발전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모교에 대한 애정을 끊임없이 가져 주시길 바랍니다.
바쁜 와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표삼수 이사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손성민 기자 / sungminsohn@kaist.ac.kr
신성섭 기자 / newstar723@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