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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달
걸어오신 길(1931-)

1992년 우리별1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었을 때,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22번째 위성보유국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후, 위성기술 분야에서 대한민국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고, 이제는 인공위성을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하는 국제적 위상까지 갖추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위성기술의 불모지에서 위성수출국으로 성장 발전하게 된 것은 창조경제의 대표적인 모범 사례이며, 그 성장과 발전은 최순달 박사님의 우주개발에 대한 지대한 공헌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우주개발의 역사와 성과를 이야기할 때 대한민국 우주개발에 선구자적 공헌을 하신 최순달 박사님의 업적은 항상 널리 회자될 뿐만 아니라, 최순달 박사님은 「대한민국 우주개발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최순달 박사님은 1954년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1957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60년, 1961년 각각 버클리대학(Univ. of California at Berkeley)에서 전기공학 학사, 석사학위를 받고, 1969년 미국 스탠포드대학(Stanford Univ.)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69년 7월부터 1976년 1월까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부설 연구소인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 Jet Propulsion Laboratory)에서 우주선 통신장치 개발책임자로 일하면서, 훗날 대한민국 국적의 인공위성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우주선 시스템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개발경험을 축적하였습니다. 1976년 귀국하여 (주)금성사 중앙연구소 초대소장, (주)동양나이론 전자사업부 상무, 1981년 한국전기통신연구소 초대소장, 한국전자기술연구소 소장, 한국전력공사 초대 이사장, 1985년 한국과학기술대학(현재의 한국과학기술원 학부과정) 초대학장, 한국과학재단 이사장 등 산학계 모두 활발히 활동하시며 과학기술진흥에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최순달 박사님은 1989년 2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로 복귀하여, ‘우주기술은 국가발전의 필수 기술’이라는 신념으로 과학실험용 소형 인공위성의 개발을 계획하고, 1989년 8월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를 설립하여 초대소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최순달 박사님은 1989년 10월 5명의 KAIST 학부 졸업생들을 영국 써리대학(Surrey Univ.)으로 최초로 유학을 보내어, 약 1년간의 위성공부를 마치고 1991년 1월 영국 써리대학 써리위성기술회사(SSTL)의 인공위성팀과 공동으로 우리별1호 개발에 착수하도록 하였습니다. 우주기술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가 독자적 위성개발의 능력을 갖추게 된 데에는 최순달 박사님의 인재육성에 대한 열의와 우주개척에 대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최순달 교수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적 위성인 우리별 1호의 성공적인 개발 및 운용을 이룩하였으며, 이를 발판으로 우리별 2호를 국내에서 자체적인 기술과 인력으로 개발하여 명실상부한 기술의 자립화를 이룩함과 동시에 독자적인 소형위성 설계 및 제작 능력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위성 분야의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큰 성과를 얻게되었고, 또한 우리별 1,2호의 시스템 구성 핵심기술과 우주에서의 운용결과를 다수의 논문으로 학술활동을 하셨습니다. 총 69편의 논문이 국내외 학술지 및 학술대회에서 발표되었고, 그간에 연구실적을 인정받아 NASA 기술상, 청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세종문화상 과학상, 장영실 국제과학문화상 등 수많은 수상이력을 남기셨습니다.
일평생을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과 산업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특히 우리나라 우주개발의 미래를 위해 선견지명으로 선구자적인 개척과 도전을 행한 공로를 인정하기에, 우주분야의 많은 과학기술자들은 최순달 박사님을 「대한민국 우주개발의 아버지」라 추앙하는 것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습니다.